박형서 교수, 이야기와 환상, 그 사이를 여행하다
  • 작성일 2023.12.21
  • 작성자 미디어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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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로 데뷔한 그는 어느 평론가의 말마따나 단편소설 미학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준다. 밀도 있는 구조와 불현듯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질문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2006년「자정의 픽션」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2010년, 첫 장편소설「새벽의 나나」를 발표하면서 제 18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가장 최근에 책으로 나온 작품은 2011년에 출판된「핸드메이드 픽션」이 있다. 올해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박형서(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를 만나보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2,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부문을 수상하셨다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떠나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제가 나이가 있어서 요번에 못 받으면 아예 못 받는 거였어요. 72년생이니까 올해 마흔인데, 이게 원래 20, 30대 작가들에게 주는 상이어서 생각은 안 하고 있었죠. 게다가 올해 제가 후보로 올랐던 것들이 다 떨어졌거든요. 동인 문학상도, 황순원 문학상도 이효석 문학상도 다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것들은 나이 제한이 없는 거고 젊은 예술가상은 나이 제한이 있어서 이번이 마지막 찬스였죠. 다행이다 싶었어요(웃음).

 

여섯 살 때 청력을 잃으셨다고 들었어요. 이후 청력을 회복하고 초3 때 글짓기 대회를 통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글을 다시 배웠죠. 그 나이에 언어를 듣지 못하면 말을 못하게 돼요. 청력이 회복되면서 외할머니를 통해 말을 배웠지만 글씨도 잘 못썼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글짓기 상을 받고 ‘나 이거 잘 하나보다’하고 담백하게 결정을 내렸어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다른 이야기’가 지니는 특별한 힘이 있나요?

 

보통 우리가 아무리 저쪽을 이야기하더라도 결국은 이쪽을 이야기하는 거고, 옛날을 이야기하더라도 오늘을 이야기하는 거고, 그들을 이야기하더라도 우리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야기라는 게, 지금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어떤 작가들은 곧바로 지금 여기 우리를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고 또 다른 작가는 아주 먼 옛날 먼 지역, 아주 특이한 다른 사람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를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예요. 저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삶의 곡진함들, 그것들을 따지기보다 비유로써 소설을 쓰고자 노력해요.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는 아무래도 ‘다른 방법’이 필요할 텐데, 작품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어떤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가치가 있어 보인다고 느끼면 거기에 장치를 설정하고 캐릭터에 의미를 부여하죠. 어떤 작가들은 캐릭터에 집중해서 시작할 수도 있고, 리얼리즘 시대에 많이 그랬듯 주제를 하나 정해서 거기에 어울리는 사건을 구성하고 인물을 설정할 수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어떤 재밌는 사건이 있고 의미가 있다면 그 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캐릭터를 부여하고 주제를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갈지 정해요.

 

교수님께 소설이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의 장르라고 하셨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현실에는 답이 없고 질문만 있다는 건가요? 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것’은 누군가가 경험하고, 그 경험에서 얻은 답을 제시하는 과정보다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하는 과정에서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해요. 답을 제시하는 건 쉽지만 오늘날에는 ‘항상, 언제나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떤 지식인들의 합의라는 게 있거든요. 결국 답을 제시하는 건 무모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작가의 몫이란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본인의 소설에 대해 ‘너무 환상성에 치우쳐서 깊이가 없지 않느냐’ 라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환상적인 것과 깊이가 없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사실상 둘 사이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이야기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깊이라는 게 있고 독자가 얻어낼 수 있는 깊이라는 게 있는데 독자가 거기에서 무언가를 얻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어떤 한 소설이 깊이가 없다고 본다면 독자가 자기와 그 이야기의 접점을 찾지 못한 거지 그 안에 담겨 있는 깊이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본다는 것은 무리가 있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이 있어요. 어떤 평론가가 당신의 소설은 재밌지만 깊이가 없다고 말해요. 이 한마디 때문에 예술가가 파멸해가는 이야기인데, 도대체 깊이라는 게 무엇인가? 저는 이 말을 진지하지 않다고 해석하거든요. 그런데 진지하지 않다는 의미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어떤 관습이나 관념들, 이런 것들을 조롱하고 열심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될 텐데 저는 이게 어떻게 보면 소설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깊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건 사실 진지하지 않다는 이야기이고, 진지하지 않다고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은 조롱하고 있다는 건데 그 말을 깊이가 없다고 얘기를 하죠. 사실 따져보면 두 말의 의미가 완전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저는 불만이에요.

 

어느 인터뷰에서 아직은 박형서的인 뭔가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우리가 박형서的인 무언가를 볼 수 있을까요?

 

올해 어느 유명한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작가는 선배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영역을 탐험하고 모험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기존의 선배들이 넓혀 놓은 영역 속에서 깊이 들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들이 가보지 않은 영역을 넓혀보는 게 진정한 임무가 아닐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동안 이런저런 실험을 해왔고, 물론 언젠가는 박형서的인 게 나오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탐험과 모험을 멈추고 주저앉을 생각이 별로 없어요(웃음).

 

고양이를 키우신다고 들었어요. 혹시 고양이에게서 영감을 받는 경우도 있나요?

 

영감을 얻는 경우는 별로 없고, 다만 글을 쓰다가 지나치게 몰입해서 세상과의 어떤 끈이 끊겨져 나갈 때, 이를 테면 게슈탈트 붕괴가 올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들. 한마디로 정신줄을 놓는 상태,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고양이가 슬쩍 나를 스치고 지나가면 승천하려다 말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죠. 그런 점에서 많은 도움을 줘요. 개는 너무 호들갑스러워서 몰입의 상태로 아예 떠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반면 고양이는 조용히 ‘너무 멀리 가지 마’ 하고 지나쳐가죠.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소설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혹은 마음가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질문하는 거. 계속해서 세상에 대해서 질문하는 거요.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어요. 선생님이 알려주는 것들, 하다못해 ‘소설은 일어날 법한 일을 쓴 허구의 장르다’라는 정의 속에서 ‘과연 일어날 법한 일들만 써야 하는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은 쓰면 안 되는가?’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일탈을 꿈꾸는 게 가장 중요한 작가의 덕목이 아닐까요.

 

소설을 쓰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정에 한마디 해주신다면?

 

‘나는 어떤 소설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더 좋은 소설을 읽는 것도 중요하고 글을 열심히 써 보는 것도 중요하죠. 多讀, 多作, 多想量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중에서 다상량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많이 생각해야 하고 많이 쓰고. 그렇다고 다독이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닌데, 자기세계를 정립하는 데에 무게중심을 둬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전 소설「어떤 고요」에서 이렇게 말한다. “등단하기 전부터 나는 나 자신이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다르게 쓰는 작가라 생각해왔고, 그게 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다르게 쓴다’는 말은 물론 남들과 다르게 쓴다는 뜻도 포함되지만 그보다는 나 스스로 전과 다르게 쓴다는 의미다.”


* 자료 출처 : 세종캠퍼스홈페이지 -KU Sejong New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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